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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돈과 사람이 몰리는...

돈벌이 2024. 9. 21. 17:11

부제: 한반도 부의 흐름을 한눈에 살피는 부동산 입지 변천사

저자 : 이상우(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 서울대 공학 석사),

           유성운(중앙일보 기자, 고려대학교 역사학과)

 

<이상우 저자의 머리말>

부동산은 면면히 흐르는 인간의 삶이다. 

이책을 통해서 부동산에 대한 시각이 근래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삶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모두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유성운 저자의 머리말>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사람은 어디에서 사는가

인간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어떤 곳이 가치있는 땅이라고 했는지를 살펴보고 오늘날에도 어떤 곳에 살고 싶어하는지 답을 찾기를 바란다.

 

<내용>

우리나라 부동산 부의 역사라는 주제로 5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별로 2개의 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각 부는 교육환경, 직주근접, 교통호재, 자연환경, 도시계획으로 오늘 날 아파트를 고르거나 부동산에 투자할 때의 주요 체크포인트와 같다.

 

1부.  부동산 보는 안목을 키우는 첫 번째 키워드 :  교육환경

1장. 좋은 학군은 예나 지금이나 선호 지역 1순위

고려시대 과거 급제 1순위는 개경의 구재동이었다. 우리가 국사에서 보던 해동공자 최충이 요즘으로 치면 입시전문학원 같은 것을 운영했다. 고려시대에도 과거 급제를 위해서 지방에서 개경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한양이 이러한 역할을 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였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는 지방에서 과거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한양 거주자의 급제율이 증가하였다. 즉 교육인프라가 한양으로 집중되었고, 이 시대에도 자식교육을 위해 한양을 열망했다. 하지만 한양의 집값이 비싸 정약용도 경기도로 밀려났다.

2장. 좋은 학군은 예나 지금이나 선호 지역 1순위

교육이란 어떤 지식을 얻느냐가 아니라 어느 네트워크를 가지느냐가 목표가 되었다. 좋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싶어하는 욕구는 상류층보다 중산층에서 더 강하다. 고교 평준화는 학군지 부동산의 가치를 월등히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2부.  부동산 보는 안목을 키우는 두 번째 키워드 :  직주근접

3장. 일자리 많은 곳에 돈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

궁궐과 가까운 곳이 비쌌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의 노른자위가 내동내문 안쪽의 정승동이라는 곳이다. 현재의 만월대 동쪽과 남쪽인데 고려궁궐의 바로 코앞이라 출근이 용이했다. 그리고 정승이 많이 살아 정승동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도 한양의 북촌이라 불리는 곳이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촌의 집한채가 종9품관리의 50년치 녹봉이라고는 기록이 있다.(현재 연봉 4000만원이라고 환산해 보면 20억원임)

조선시대에는 중촌(지금의 종로)이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거주지로 선호되었다. 시전은 조선시대 최대 상업지구였고 궁에서도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로 상인들과 궁에 소속된 의관, 역관, 화원 등이었다. 몰락한 양반들이 살고 군 시설이 많았던 남촌보다도 중촌이 집값이 더 비쌌다.

4장. 고소득직종이 어디로 이동하느냐에 주목하라.

기업들은 핫플레이스를 지키고 있다. 삼성은 대구에서 서울 태평로, 서초동으로 이동했고, 현대자동차는 종로구 계동에서 2000년도에 양재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2026년 이후에는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길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중구 소공동에서 2016년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입주했다. 이러한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연봉도 높아서 해당지역에 높은 주거비를 부담할 수 있다.

그리고 IT기업들이 전통기업보다 연봉이 높은데 판교에 집중되다 최근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추세이다. 이는 인력확보가 판교보다 강남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으로 지방시장에 일부 고소득자를 옮겨놓아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3부.  부동산 보는 안목을 키우는 세 번째 키워드 :  교통호재

5장. 길이 있는 곳에 1등 도시가 있다.

고대 동아시아의 물류 통로 김해였다. 고대 가야는 김해지역의 금관가야가 가장 번성했는데 한나라, 일본과의 교역을 하는 해상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역항으로서의 위상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지형이 변해서 모래가 쌓여 항으로서 이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주가 막히면 국고가 빈다. 충주는 한강뱃길과 육로 교통의 거점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엔 국원성,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원경이라 불렸다.조선시대에는 충청, 강원, 경상도의 세곡이 거쳐가는 지역이었고 영남대로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철도가 대전지역으로 뚫리면서 충주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30년대 청주 인구의 1.5배 였으나 현재는 1/4수준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방사형으로 10대로가 있었다. 이중 의주1대로가 이름 그대로 오늘날의 1번 국도의 역할을 했다. 중국과 육로를 통한 교류가 가장 번성했으므로 한양에서 평양, 안주, 정주, 의주로 이어지는 대로가 중요했다. 그래서 정주가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부를 기반으로 해서 교육열도 높았다. 용산에 있는오산고등학교가 평북 정주에서 서울로 옮겨와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6장. 도로만 따라가도 투자 어렵지 않아요

도로의 신설은 도시의 확장을 가져오며, 직선보다는 환상선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도로의 부작용(소음, 분진)을 줄이는 덮개를 씌우거나 지하화하는 것은 매우 큰 호재이다.

철도는 있는 노선을 연장만 해도 큰 파급력을 가져오며 신설은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그동안 지방의 철도 상황이 앞으로 개선되면 좋아질 것이고 장거리 통근도 수월해질 것이다.

 

4부.  부동산 보는 안목을 키우는 네 번째 키워드 :  자연환경

7장. 자연이 부동산과 부의 지형을 바꾼다.

서울은 백제, 고려(남경), 조선시대에서 수도 선택되었다. 그 이유는 배로서 북한강, 남한강 유역을 통해 춘천, 충주, 단양, 영월에 닿기 쉬우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물류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울산이 현재의 공업도시가 되었지만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철 생산지였다.

그리고 1930년대 충남 직산에 재벌기업이나 부자가 몰린 이유는 황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남의 양반(퇴계 이황이 대표적)들이 부를 축적한 것은 모내기 이앙법이 들어오면서 여름철 물을 확보하기 쉬운 계곡이 있는 지역에서 농업생산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8장. 이젠 자연환경도 인공으로 만들어내는 시대

기술혁신 덕분으로 유수지, 매립지, 산지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인위적으로 호수공원, 중앙공원 등을 조성하여 랜드마크로 만들어 가치를 높이고 있다.

 

5부.  부동산 보는 안목을 키우는 다섯 번째 키워드 :  도시계획

9장. 뉴타운 사업의 원조, 이성계의 한양 천도

조선은 한양 천도가 외면 받자 개성의 상점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해서 수도이전을 성공시켰다. 

한양은 10만명 규모로 만든 계획도시였으나 100년도 안되어 주택난이 시작되자 결국 부도심을 만들었다.

조선은 신도시인 4군6진을 조성하고 강제이주를 시행하였으나 기후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아 4군을 없애는 "폐사군"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정조는 화성신도시의 유입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상업과 세제혜택을 제공하였다.

10장.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

과거에는 저렴한 일자리를 제공했던 공장지대가 이제는 첨단산업의 메카로 변했다.

기차역 역세권은 과거에는 기피지역이었으나 이젠 직주근접의 인기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지금 있는 신도시를 개선하는 것이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도바 훨씬 유용하다.

수동권에 기능을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정치적 부담은 커진다.